묘지 틈바귀 덤불 속에 숨어 있는 족은노리오롬
묘지 틈바귀 덤불 속에 숨어 있는 족은노리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3.2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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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봉개동 족은노리오롬

족은노리오롬(28m)과 큰노리오롬(52m)은 제주시 봉개동 산 294-22번지로 같은 번지에 있는 마치 형제 같은 오롬이다. 그러나 봉개동 명림로 상에서 족은노리오롬은 찾기 쉽지 않다. 봉개동에서 낳고 자라도 오롬에 별로 관심이 없다면 노리오롬을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 족은노리오롬은 끈질기게 찾아야 찾을 수 있는 덤불 속에 작은 오롬이다.

제주도 368개 오롬 중에 탐방로가 있는 오롬은 3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머지 3분의 2가 넘는 오롬들이 탐방로 없거나 찾기 어려운데 그것을 증명 하듯이 족은노리오롬은 산노루처럼 숨어 있다가 ‘깍꿍’하며 얼굴을 내민다. 큰노리오롬에서도 보이지 않던 족은노리오롬이 동쪽 편 무덤 군락 앞에서 보니 큰노리오롬과 형제 모습으로 자태를 보여준다.

무덤 군락의 묘비를 살펴보니 진주강(姜)·풍천임(任)·성주이(李)·경주김(金)·김해김(金)·전주최(崔)·전주이(李)·한양조(趙)·남양홍(洪)씨 등의 무슨 무슨 공파(公派)라는 가족묘지들이 모여 있는 게 제주시 해안동 군락들과 닮았다. 비석들의 글귀를 보니 ‘선조님 묘소들을 양지 바른 노루손봉으로 이묘하여 정성껏 가꾸고 보존 관리 하고져 합니다. 西紀二千十五年 四月四日’이라 쓰였다.

이제까지 이 오롬은 노루손이·노루생이·장악(獐岳)·장손악(獐孫岳) 등으로 불려져 왔다. 여기서 장악(獐岳)은 노루장(獐)자를 썼다. 19세기 중반에 제주 목사로 부임해 최초로 제주 오롬들을 등재한 이원조 목사는 ‘탐라지초본’에 장악(獐岳)으로 등재했다. 이는 단지 기왕에 부르던 명칭을 한자로 해석하여 노루 장악으로 등록한 것이지 ‘노루(노리)’와는 전혀 무관하다.

고려 시기에 큰노리·족은노리오롬은 노루와 무관한 몽골어인데 이를 음차해 한자로 기술한 것이다. 이는 몽골어에서는 봉우리로 연결된 곳을 ‘노로(нуруу)’ 라고 하는데 여러 개의 봉우리가 연결된 ‘산맥’을 말한다. 이와 달리 하나씩 솟은 화산체(山)를 ‘올-오로(УУЛ)라고 하는 데 제주에서는 ‘ㅁ’을 첨가해 강하게 발음해 ‘오롬’이라고 불렀다.

김승태는 ‘제주의 오름 368’에서 “…연이어지는 오름들의 품평회가 장관을 이룬다. 바농·족은지그리·큰지그리·민오롬·족은절물·큰절물·개오리·거친오롬으로 이어지는 오름들은 8폭 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하듯이 노리오롬의 ‘노리’는 제주어 ‘노루=노리’가 아니다. 노루는 제주 어디에도 흔하고 제주 전역을 뛰어다니지 한곳에 머무는 놈이 아니다.

또한 몽골어 노로(нуруу)는 ‘뒤·등’이라는 말이다. 이는 명림로에서 제일 높은 거친오롬·절물오롬의 뒤에 있다는 말이다. 몽골어 노로온нуруу(н)은 ‘등뼈·척추’로 지리학에서 ‘산마루·산등성이·산의 능선’이란 말이다. 애월 노꼬메의 ‘노’도 같은 뜻이다. 또한 태백산·소백산 산맥과 같다. 한라산은 산맥이 없다고 하나 몽골인들은 이곳을 한라산맥의 줄기로 보았다.

혹시나 해서 봉개동사무소에 “족은노리오롬에 탐방로가 있는가” 문의하였지만 아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오롬에 대해 비교적 잘 안다는 조씨를 소개해 주어서 “족은노리오롬으로 탐방로가 있는가?”물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탐방로는 없었다. 무작정하고 남쪽 편 오롬군락에서 족은노리오롬을 향해 무덤 사이를 요리조리 돌아서 직진했다.

높지않은 오롬은 거칠기가 말할 수 없다. 찔레·산딸기·나무딸기·퀴카시(구지뽕) 가시들을 헤치쳐 나가니 오래된 숲에는 윤낭(鐘木)·합다리·고로쇠·굴피나무들과 윤노리·산상·가마귀쥐똥·산수국 등이 그 아래로 밀집했다. 그 중에는 소나무와 낙엽수들을 붙잡고 기어오르는 송악줄·덧나무 등의 넝쿨 줄기들이 살아 있는 나무들을 욱죄어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시로 무장한 머귀나무는 기어오르는 놈이 없으니 꿋꿋이 겨울 숲에 잠들어 있다. 족은노리오롬 남쪽 기슭은 후박나무 같은 정원수를 키우는 듯하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곳은 편백나무들이 줄지어 심겼다. 조금 더 오르니 소나무 군락들이다. 필자는 2008년 이후 16년 만에 이 오롬을 탐방하는 꼴인데 그동안 족은오롬이 이렇게 변한 것인가?

노루손이북길 푸른 목초밭에서 보니 상록수 위로 솟은 오롬들이 연이어 푸른 빛 소나무·편백들이다. 묘지들을 감싸 안은 족은노리오롬은 산자의 오롬이 아니다. ‘제주인은 오롬에서 나서 오롬에서 살다가 오롬에 뭍힌다’는 말을 실감하는 듯 노리오롬은 부활의 봄을 기다린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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